“일요일에는 쉬세요” — 썬데이 바이러스와 추억의 백신 (번외편)
“일요일에는 쉬세요” — 썬데이 바이러스와 추억의 백신(번외편)
DOS 시절에는 바이러스조차 지금과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파일을 망가뜨리는 위험한 존재였지만, 때로는 화면에 문장을 띄우거나 특정 날짜에만 소동을 벌여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중요한 자료를 지켜야 했기에 결코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썬데이 바이러스(Sunday Virus)’였다. 예루살렘 바이러스 계열의 이 바이러스는 실행 파일을 감염시키고, 일요일이 되면 문제를 일으키도록 만들어진 변종이 있었다. 감염된 파일 안에는 대략 이런 뜻의 문장도 들어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세요?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됩니다. 밖에 나가 재미있게 노세요!”
컴퓨터가 사람에게 휴일을 명령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컴퓨터도 일요일에는 쉬어야 한다”, “일요일에 일시키면 컴퓨터도 화를 낸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돌았다.
백신을 쉽게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더욱 기발한 대처법이 등장했다. DOS 화면에서 DATE 명령어를 입력해 컴퓨터 날짜를 토요일이나 월요일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C:\>DATE
컴퓨터의 달력을 속여 바이러스가 일요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이러스를 치료한 것이 아니라 발동 시점을 잠시 피한 임시방편이었다. 날짜를 바꿔 한숨을 돌린 뒤에는 감염되지 않은 디스켓으로 부팅해 백신을 실행하거나 중요한 파일을 복구해야 했다.
국산 바이러스도 등장했다. 1989년에 크게 퍼진 LBC 바이러스는 하드디스크를 감염시켜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거나 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치료 프로그램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당시에는 화면에 유명인의 이름이나 익살스러운 문구를 띄우는 정체불명의 프로그램도 돌아다녔다. 배우 최진실 씨의 사진이나 “최진실 만세”라는 문구를 보았다는 기억도 남아 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바이러스였는지는 이제 기억과 기록이 희미하지만, 컴퓨터 화면에 갑자기 유명인이 등장하던 순간의 황당함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던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는 ‘의사’가 나타났다. 1988년 의학도였던 안철수 박사는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디스켓을 발견하고 밤마다 바이러스를 분석해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사람의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처럼 ‘백신(Vaccine)’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때마다 치료 기능이 더해졌고, 백신Ⅱ와 백신Ⅲ를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V3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무료로 배포된 작은 DOS 프로그램이었지만, 수많은 컴퓨터와 소중한 자료를 지켜주는 든든한 주치의가 되었다.
지금은 백신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고, 위험한 파일을 알아서 격리한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는 감염되지 않은 부팅 디스켓 한 장을 보물처럼 간직했다. 때로는 날짜를 바꾸어 바이러스를 속이고, 때로는 밤새 파일을 복구하며 컴퓨터와 씨름했다.
돌이켜보면 DOS 시대의 컴퓨터 사용자는 단순한 이용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사용자이면서 정비공이었고, 의사였으며, 때로는 바이러스와 머리싸움을 벌이는 탐정이기도 했다.
여러분의 경험과 생각을 남겨주세요. 댓글은 관리자의 확인 후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