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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맥가이버 제2화

명동의 맥가이버 제2화

1980~90년대 서울 명동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처럼 뛰었다. 무역회사들은 세계 각국으로 물건을 보내고 서류와 전표는 책상 위에 산처럼 쌓였다. 그 골목에서 나는 조금 특별한 별명으로 불렸다. ‘컴퓨터 맥가이버’였다.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 한 대만 멈춰도 사무실 업무가 줄줄이 멎었다. 호출을 받으면 디스크가 든 가방을 챙겨 명동 골목을 뛰었다. 직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김 대리, 서류 출력이 안 돼! 맥가이버한테 빨리 연락해 봐!”

현장에 도착해 몇 가지 명령을 입력하고 다시 프린터가 움직이면 사람들은 마술이라도 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프로그램 개발자이면서 수리기사였고, 때로는 전산 상담원이기도 했다.

당시 무역회사의 큰 고민은 수출입 서류, 재고, 환율, 대금 결제를 정확하게 관리하는 일이었다. 내가 그 복잡한 업무를 전산화하며 붙잡았던 언어가 COBOL이었다.

요즘의 Python처럼 짧고 유연한 언어와 달리 COBOL은 업무 데이터를 다루도록 태어난 묵직한 언어였다. 화면 가득 대문자로 구역(DIVISION)을 나누고, 문장 끝의 마침표 하나까지 엄격하게 지켜야 했다.

IDENTIFICATION DIVISION.
PROGRAM-ID. TRADE-MANAGEMENT.
ENVIRONMENT DIVISION.
DATA DIVISION.

수천 줄 가운데 마침표 하나가 빠지거나 정해진 열(Column)에서 글자 한 칸이 어긋나면 컴파일러는 냉정하게 오류를 내놓았다. 오류가 난 지점과 실제 원인이 다른 곳에 숨어 있을 때는 밤이 유난히 길어졌다.

그 규칙에는 천공카드 시절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카드 한 장이 코드 한 줄이던 시대의 질서가 화면 속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장공간이 귀해 연도를 네 자리가 아닌 두 자리로 기록했던 관행은 훗날 세계를 긴장시킨 Y2K 문제의 씨앗이 되었다.

나는 무역회사의 업무 흐름을 하나씩 물어보고 무역관리 프로그램에 담았다. 송장 번호가 자동으로 매겨지고, 환율과 결제 내역이 정리되어 화면과 인쇄물로 나올 때 직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매일 손으로 반복하던 일이 키보드 몇 번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전산실은 기계 열기를 식히느라 한여름에도 이가 떨릴 만큼 차가웠다. 기계가 ‘스르륵, 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동안 코드를 수정하고 데이터를 점검했다. 밤샘 작업을 마치고 문을 열면 명동 거리에는 새벽 기운이 차올랐다. 그때 먹던 뜨거운 해장국 한 그릇은 어떤 고급 식사보다 맛있었다.

오늘은 자연어로 AI에게 송장 초안을 만들고 자료를 분류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환율, 관세, 거래 조건처럼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사람이 원문과 공식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AI는 일을 대신 책임지는 전문가가 아니라 빠르게 초안을 만드는 조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변화는 놀랍다. 예전에는 까다로운 코드를 수백, 수천 줄 입력해야 했던 일을 이제는 목적과 조건을 우리말로 설명하며 시작할 수 있다. COBOL의 엄격한 규칙을 견디고 업무 흐름을 논리적으로 정리했던 경험은 AI에게 정확히 지시하는 데도 큰 힘이 된다.명동의 맥가이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각자의 책상에서 외롭게 돌아가던 컴퓨터들을 선 하나로 묶어보자는 더 큰 도전이 찾아왔다. 다음 화는 책상 밑을 기어 다니며 20대의 PC를 연결했던 LG 란스마트(LanSmart)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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